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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우리가 누리는 평온한 지금
00:26이 땅은 수많은 이들의 눈물과 희생을 품고 있습니다
00:32대한민국의 원우를 지키기 위해
00:37이영만리 태국 땅을 찾았던 어제의 용사들
00:41그들을 떠올립니다
00:43그 어려울 때 도울 수 있는 나라들이셨다니
00:48얼마나 다행이냐 하는 생각이고
00:51최후의 보루가 생명인데
00:53그 생명을 바쳐서 우리를 위해서 싸워줬다는 게
00:57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00:5975년 전
01:03우리나라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01:06대한민국을 찾았던 195만 명의 청년들
01:09그 중 4만여 명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01:13전사했습니다
01:14잊을 수 없고
01:20잊어서도 안 되는 그날의 이야기입니다
01:24영웅들을 기억하는 것은
01:34오늘을 사는 우리의 의무이기에
01:36당시 치열했던 한반도의 이야기를
01:40한 권의 책으로 엮은 사람이 있습니다
01:43유교가 얼마나 거대한 전쟁이었고
01:48유엔군이 60개국이 참전했고
01:52인원이 몇백만이 희생된 전쟁인데
01:55역사에 사라질 수 있겠구나 생각이 들어서
01:59기록을 남기고 싶어서 만들게 되었습니다
02:041129일이라는 시간 동안
02:09국내외에서 벌어진 방대한 일들을
02:12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자료로 남겼습니다
02:15중국과 소련과 미국과 해서
02:20저희도 수집해서 제가 그걸 편절을 한 것입니다
02:23날짜별로 어제 무슨 전투가 있었고
02:26오늘 전투가 있었고
02:27기록하다 보니까 날짜로 해야지
02:30그냥 소설처럼 올 중순에 몇십만이 싸우다가 살았습니다
02:36그렇게가 아니고 당일당일 기록을 남겼습니다
02:39그래서 날짜하고 날씨 들어가 있고
02:42일진도 들어가 있을 거예요
02:44어떤 과정을 거쳐서 현재 우리가 존재하는가
02:48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되는가
02:51방향을 잡게 하기 위해서
02:52역사 기록을 남겼습니다
02:54첫 페이지는 6월 25일부터입니다
03:01갑작스러운 북한군의 남침
03:04비극적인 역사의 시작이었습니다
03:086.25 첫날 비가 오는데
03:13촌둥소리인 줄 알았어요
03:15쿵쿵 쿵쿵 오기 때문에
03:17그런데 나중에 피라민들이 나오는 걸 보니까
03:21전쟁이 터졌다고 얘기 들었습니다
03:23명백한 기습 공격
03:40북한군은 빠른 속도로 38선을 넘어 내려왔습니다
03:44다급한 상황에 국군도 거세게 맞섰지만
03:47준비 없이 당한 전쟁에
03:50병력도 장비도 모두 역부족이었습니다
03:533일 만에 서울을 내주었고
03:56대전까지 밀렸습니다
03:58참혹했던 그 순간
04:00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빠르게 소집됩니다
04:06그리고 소련이 불참하게 되는데요
04:10상임의사 5개국이 미국, 영국, 프랑스
04:15그 다음에 지금의 대만인 중국
04:18그리고 소련이었습니다
04:20그런데 그 안보리 결의를 할 때
04:22소련이 거기에 불참을 합니다
04:24미국은 소련의 불참을 기권으로 판단하고
04:28유엔국의 이사옥들의 동의를 얻어서
04:32표결을 붙여서 만장일치로 통과시켰기 때문에
04:34그렇게 해서 유엔군이 창설되고
04:37개입할 수 있게 된 겁니다
04:39전쟁 3일 만에 극적으로
04:59한국에 대한 유엔 군사지원이 결의됐습니다
05:04유엔이 생긴 이래 최초의 파병 결정
05:1822개 나라가 한국을 돕기로 한 겁니다
05:22그렇게 신속하게는 하루 이틀 만에
05:27그렇게 유엔 결의가 동시에 떨어질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05:30그래서 대한민국이 존재한 것은
05:33하나님이 보고 바사했다
05:36저는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05:38그렇게 일치하게 딱딱 들어맞을 수가 없었습니다
05:40유엔 안보리 결의를 주도하고
05:45가장 빠르게 대규모 지상군을 파병한 나라
05:48바로 미국이었습니다
05:50한국이 북극적으로 대규모 지상군을 파병한 나라
05:53한국에는 북극적으로 동의를
06:07그러나 소련제 특수무기로 무장한 북한군은 거침이 없어 초반 열쇠는 나아지질 않았습니다.
06:3340여일 만에 남한 땅 90%를 잃은 상황
06:38낙동강 방어선의 마지막 배수진을 친 국군과 유엔군은 물러설 곳 없는 격렬한 전투를 이어갔고 사상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습니다.
07:03병력 보충을 위한 당시 정책으로 등교길에 진집된 류영봉 씨.
07:20영어를 할 줄 알았기 때문에 유엔군으로 투입됩니다.
07:23첫 임무는 훗날 전세를 역전시키는 결정적인 작전.
07:35첫 임무는 훗날 전세를 역전시키는 결정적인 작전.
07:49적의 허리를 끊고 북한군을 고립시키는 인천 상륙 작전이었습니다.
07:53조수 간만의 차가 심하고 수로가 좁아 위험천만한 계획이었지만 맥아더 장군은 강력 추진했습니다.
08:03전 총각도 부산이 돼서
08:09한 장군이 여름에 heated
08:22사령관은 멕렬한 전세력까지
08:23대한 임무는 그들의 해방에
08:25시lling이 정말 많습니다.
08:30그래서 전쟁이 아주 성공했었고, 아주 빠르게 공격했었죠.
08:37월미두에서 월미두에서 제거했습니다.
08:40월미두에서 월미두에서 제거했습니다.
08:44월미두에서 제거했습니다.
08:45월미두에서 제거했습니다.
08:47월미두에서 제거했습니다.
08:55작전은 성공적이었습니다.
08:57북한군은 예상치 못한 공격에 속수무책 당했고,
09:04여세를 몰아 국군과 유엔군은 수도 서울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09:11전쟁 발발 96일 만의 일이었습니다.
09:18가장 최소의 피해를 입고 최대 성과, 즉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했던 것이고요.
09:24북한 입장에서는 후방에서의 병참선이 끊기름으로써,
09:28실질적인 전투 수행 능력이 완전히 와야 되고,
09:31그럼으로써 북한군은 전투 지휘 능력을 완전히 상실하게 됩니다.
09:35이 모든 것들이 인천산국전전을 통해서 이뤄진 것들이죠.
09:40이어 각국 유엔군의 참전은 계속되었습니다.
09:45대한민국의 평화를 위해 세계 최초로 결성된 유엔군들,
09:5616개 전투 지원국의 청년들이 지구 반바퀴를 돌아 속속 도착하고 있었습니다.
10:17이번 직장은 대한민국의 여전히 가겠습니다.
10:24한국 세계 최초로 불안한 유엔군은?
10:27국가도 인천에서 다위로 국회에 대한 우정기였을 때
10:31국가가 공 Sul거에 의심을 맞추고,
10:32은 국가 대신에 의심을 맞추고
10:35추천할 경우가 없었다고 생각했습니다.
10:37사실 이런 Çok2719의 초간에 worst될 때가 있었던 것입니다.
10:41이런 immigration,
10:44Greece Ос folds,
10:47이 manus 가지seconds,
10:49이 manus obliteration 가릴소라니까.
10:53왜 이 grape beautiful departure?
10:55
10:56conven다고 말했고
10:59나의 experiência ve
11:01인민이들을 reaching the ground is Probably not there.
11:05천군 만마 같은 유엔군 병력들이 보충되며 흐름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11:17북진 3일 만에 38선을 돌파해 단숨에 평양까지 갔습니다.
11:25기세는 거칠 것 없었고 빼앗긴 땅을 모두 회복하며 북쪽 끝까지 올라갔습니다.
11:30금방이라도 전쟁은 끝날 것 같았습니다.
12:00개마구원에서 맡아들이는 건 중공군이었습니다.
12:04장진호에 매복해 있던 중공군이 전쟁에 개입했고 6.25 전쟁은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게 된 겁니다.
12:12압도적인 병력을 앞세운 중공군의 인해 전술
12:23유엔군은 포위됐고 고립된 상태에서 2주 동안 지옥같은 전투를 이어갔습니다.
12:31뿐만 아니었습니다.
12:34난생 처음 겪는 혹독한 추위
12:36엎친 데 덮친 격으로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습니다.
12:40기세는
13:10사상 최대의 희생자를 남긴 17일간의 혈투
13:28끝내 철수를 결정할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13:32작전상 후퇴를 하면서도 중공군에 막혀 육로로 갈 수가 없는 상황
13:57바다로 가기 위해 흥남부지에 도착했을 때
14:02유엔군은 차마 외면하지 못할 모습을 보게 됩니다
14:06군수밀자를 나래던 화물선까지 총출동한 작전
14:32정원 60명인 배에 군수품을 포기하고 만 4천명을 태웠습니다
14:40적들이 무기를 쓰지 못하도록 부두를 폭파하면서까지
14:45총 10만 명의 피난민을 살린 기적같은 일이었습니다
14:49그러나 북한군과 중공군은 37도선까지 내려왔고
14:55피난길은 끝없이 이어졌습니다
14:57가장 위태로운 건 전쟁통에 가족을 잃은 전쟁고아들
15:07당장 보살펴줄 사람도 없이 매사운 겨울을 보내야 하는 절박한 처지에 놓였습니다
15:14우리가 전쟁 날 때는 6월달 아닙니까?
15:19처음보다 여러 못 있고 전부 다 전쟁을 겪으면서 지나왔는데
15:2312월달 되니까는 눈보라 치고 진작만 하는데
15:27다 얼어죽게 생긴 거라 말하려면요
15:30제우시 끌고 나와서 서울 시내 그냥 그 길바닥에 우러진 고아들을 갖다가
15:35보기만 하면 다 좋아, 싫은 거예요
15:37제우시에다가 미군들이 전부 다
15:39그냥 차로 싣고 들어오면 홀짝 벗겨서 목욕을 시키는 거라 뜻이 무르다가
15:44그래갖고 내복 같은 거 하나 입혀서 교실에다가 집어넣고
15:48교실에는 난로 피하고 뜨끈뜨끈하게 해놓으니까
15:51그것도 알고 있던 애들이 그냥 천국에 온 것과 마찬가지지
15:54한치 앞을 모르는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16:00아이들의 손을 잡고 온기를 나눠준 건 바로 유엔군들이었습니다
16:06제우시 끌고 있는 전쟁은
16:36이 공군이었던 러셀 블레이즈델 대령은 향후 군법회의에 붙여질 위험을 무릅쓰고도
16:42공군 수송기 16대를 이용해 전쟁 고아들을 제주도까지 피난시켰습니다.
16:51천여명 아이들의 목숨을 구한 값진 일이었습니다.
16:55가만히 이렇게 생각해보면 옛날에 그 사람들이 그렇게 날 도와주지 않았으면
17:01내가 지금 이렇게 있었을까 이런 생각도 되지
17:06유행군이 없었다면 우리는 세상에 없다고 볼 수도 있어요. 이 순간까지
17:12뿐만 아니었습니다. 미국, 영국, 캐나다에 이어 네 번째로 많은 파병을 했던 트루키에
17:24썬더블 작전과 용인 김양장 전투에서 승리하며 용맹함을 떨쳤던 이들은
17:30고아들을 위한 학교를 만들어 교육하고
17:34남다른 애착으로 아이들을 정성껏 보살폈습니다.
17:411952 senesindeki 빌리트에 가면
17:44onlar bize 아이는 silahını devreder gibi
17:46çocuklarını bize devredtiler.
17:47가이드 vardı.
17:48hepsinin?
17:49tabii. 가이드 vardı.
17:51onu biz bakmak zorundaydık.
17:53her bölükte bir iki çocuk vardı.
17:54biz bunları taşıyorduk.
17:55cephede beraberimize götürüyorduk.
17:57bu çocukları, koran çocuklara bakıyorduk.
17:58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지상군을 파병했던
18:03에디오피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8:08당시 참전 군인들은 십시일반 적은 월급을 모아서
18:13보아원이라는 고아원을 후원했는데요.
18:1670여 년 전 한국의 아이들을 지킨
18:35에디오피아 군인들
18:36그 마음은 생각보다 깊게 이어집니다.
18:434년 전 세상을 떠난 아버지가
18:59평생 이야기했던 한국 사람
19:01바로 전쟁터에서 보살핀 어린 아이였습니다.
19:06박동화라는 아이였습니다.
19:33북한 전쟁 속에서 만난 박동화라는 아이.
19:38박동화라는 아이
19:40아버지는 조국에 돌아온 이후에도
19:43끝까지 책임지지 못한 그 아이가
19:45아른거린다며
19:47사진을 품고 늘 그리워했습니다.
19:51아버지는 조국에 돌아온 이후에도
19:56끝까지 책임지지 못한 그 아이가
19:58아른거린다며
19:59사진을 품고 늘 그리워했습니다.
20:02생사를 넘나드는 전장 속에서
20:09목숨을 걸고 싸우면서도
20:11한국의 어린아이를 위해
20:13온 마음을 아낌없이 내주었던
20:15생사를 넘나드는 전장 속에서
20:17목숨을 걸고 싸우면서도
20:19한국의 어린아이를 위해
20:28한국의 어린아이를 위해
20:30온 마음을 아낌없이 내주었던
20:32불차올레카시
20:34그는 22살에 한국전에 참전한
20:39강리부대의 최정예 요원
20:43용맹하고 자부심이 강한 군인이었습니다.
20:5120일 넘게 망망대해를 건너
21:04한국에 도착한 에티오피아 강리부대
21:10황제의 명을 받은 3천여 명의
21:12정예부대원들이 파병됐고
21:14단 한 번의 패배 없이
21:16모든 전투에서 승리하는
21:18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습니다.
21:20불패 신화를 썼던
21:24어제의 영웅들이 사는 곳
21:26에티오피아에 있는
21:27한국 마을입니다.
21:30참전용사들이 모여 산다는 작은 마을
21:38이제 다들 고려의 나이라
21:40몇 가구 남지 않았다는데요.
21:42참전용사들이 모여 산다는 작은 마을
21:52이제 다들 고려의 나이라
21:54몇 가구 남지 않았다는데요.
21:56하늘에서 오는 중
21:58그의 장소에서 오는 중
22:00해보는 중
22:02지금 사는 중
22:03그가 나오신 중
22:04하늘에서 오를
22:05그가 나오신 중
22:06하늘에서 오는 중
22:08하늘에서 오는 중
22:10하늘에서 오는 중
22:11아흔이 넘은 참전용사 벨라이 베껄레시는 황제의 근위병으로 근무하던 22살.
22:34한국에서 벌어진 6.25전쟁 소식에 단숨에 참전을 결심했고 가장 먼저 한국 땅을 밟았습니다.
22:4370년이 지나서도 그때의 기억만큼은 생생합니다.
23:07쉽게 사라지지 않는 한국전의 기억.
23:37한국에서 온 손님이 반갑다며 오래된 상자를 열어주는 테스파에시.
23:59그 속엔 18 어린 나이에 기꺼이 바다를 건너던 용감한 청년이 있습니다.
24:09한국에서는 이따카드 오래되었지 않냐.
24:13이 아이따카드는 그 날에 적 순서에 있다면,
24:15그곳에서 집으로 있는걸들이 작품이 되어야될 때인 줄 아는 것 같다.
24:17그들은 소녀에게 주인한 공간이 찍고 싶다.
24:21그리고 그의 시간대와 연결이 된다는 것 같다.
24:22그러니까, 그 방금을 받아서 평생을 받았다.
24:24그들은 공간에 마를 못하는 그런 소리가 있다는 것 같다.
24:27그들은 식사를 하면서 상승하는 분들에게 강행을 받았다.
24:29그가 이렇게 장착하는 것 같다.
24:30우상이었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대를 이어 황실의 군인으로 입대했고
24:51한국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참전했던 일은 가장 큰 자긍심으로 남아있습니다
24:57한국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참전했던 일은 가장 큰 자긍심으로 남아있습니다
25:27그러나 참전용사의 집이라고 하기엔 다소 철화한 모습
25:44과거 나라를 대표해 전투를 벌였던 테스파의 씨는 고국에 돌아온 후 또 다른 현실에 맞서 생전과 사투를 벌여야 했습니다
25:56에티오피아 참전용사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요?
26:261974년 쿠데타로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선 에티오피아
26:45유엔군으로 한국전에 참전했던 용사들은 공산주의에 맞서 싸웠다는 이유로 가진 핍박을 받았습니다
26:55이후 민주정권이 다시 들어섰지만 쉽게 회복되기는 어려웠죠
27:01한국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참전했던 일은 가장 큰 자긍심으로 남아있습니다
27:07한국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참전했던 일은 가장 큰 자긍심으로 남아있습니다
27:13원망할 법도 한데 한국은 그저 자랑스러운 기억이랍니다
27:33참전용사 가족만 다닐 수 있는 한글학교도 늘 인기인데요
27:49한국을 지켜냈다는 참전용사들의 자부심이 가족과 후손들에게까지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28:1975년 전 출정하던 그날을 매년 기념하는 에티오피아
28:40세월이 아무리 흘렀어도 떠올리는 것만으로 영웅들의 가슴이 다시 뜨거워지는 그때 그 시간
28:496.25 전쟁은 중공군 개입 이후 더 격렬하게 고조되었습니다
28:58프랑스의 몽클라르 중령이 이끄는 유엔군은 가평전투에서 승리했고
29:053월엔 유엔군이 서울을 재탈환하는 성과도 올렸는데요
29:11그러나 그 이후 꽤 오랜 시간 밀고 밀리는 공방전이 계속됐고
29:19전사자는 계속 늘어가고 있었습니다
29:24가장 많은 인원을 파병하고 그만큼 많은 인명 피해를 입었던 미국
29:31은퇴한 지 수십 년이 지났어도 참전용사는 그때를 선명하게 기억합니다
29:3924살에 참전했던 존 베이커씨
29:54최대 혈전지로 손꼽히는 철의 삼박지
30:09그곳에서의 복무는 7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쉽게 잊혀지질 않습니다
30:15저녁 한국은 오이의 적은 전사자
30:31뇴은 아예 뇴은 그前의 군을 찾으리라
30:44한국의 배터리 공군을 운영할 수 있습니다.
30:50제 배터리 공군을 운영할 수 있습니다.
30:56아, 네.
30:58제 이름은 여기 있습니다.
31:02네.
31:04네.
31:06평화를 수호하겠다는 의무감과 사명감으로 참전했지만
31:31전쟁 막바지로 갈수록 긴 겨착상태에 빠진 전세는 팽팽하게 이어지기만 했습니다.
31:411953년 7월 마침내 휴전협정이 이루어지는 순간
31:45그러나 그 시간까지도 전투는 계속됐습니다.
31:52휴전회담이 1951년 7월 10일부터 시작됐는데요.
31:56휴전협상하는 기간 중에도 전투는 계속된다.
32:00이게 전투 계속의 원칙이거든요.
32:02정전협상 기간 중에 전투가 계속됐습니다.
32:04그래서 대규모 사상자 인명피해가 발생하게 됩니다.
32:10협정의 효력이 발효되는 건 밤 10시.
32:15그때까지 조금이라도 더 많은 땅을 차지하기 위한 최후의 전투가 벌어집니다.
32:21몇 시간 후면 끝날 전쟁에서 사상 최대의 희생자가 발생한 겁니다.
32:27그런데 그 3일에는 약 200명의 마린이 죽었고 1,000명의 희생자가 벌어집니다.
32:36한국군은 우리나라의 적할을 마기 위해서 의무였지만
32:40미군들은 누구를 위해서만 할 게 자유가 평화를 위해서 했는데
32:45그 평화를 위해서 잘 희생되었잖아요.
32:48남의 땅을 조금 뺏으려고 얼마나 힘썼습니까.
32:51가장 먼저 압도적인 병력을 지원한 미국
33:02해군과 지상군으로 전천호 역할을 한 영국
33:06한국전 참전을 위해 법까지 개정한 벨기에
33:13자국 병력의 10분의 1을 파병한 룩셈부르크
33:17육해공군을 모두 파병했던 캐나다
33:22전투를 하며 전쟁 9화까지 돌본 티르키에
33:27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참전을 결정한 호주
33:32내란을 수습하면서도 공군과 육군을 파병한 그리스
33:38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참전한 필리핀
33:41백병전으로 중공군을 격퇴한 태국
33:47국민들의 강한 지지로 자원군까지 모집한 네덜란드
33:53중남미 유일의 참전국가 콜롬비아
33:571957년 마지막 철수살대까지 남아있던 뉴질랜드
34:03단 한 번도 지지하는 무적의 에디오피아
34:08몽클라르 장군이 계급까지 낮춰 참전한 프랑스
34:13한반도의 하늘을 지킨 남아프리카 공화국
34:171129일 동안 총 195만 명의 유엔군이 한국을 찾았고
34:25그 희생은 대단히 컸습니다
34:32낯선 땅에서 사라져간 수많은 청춘들
34:39이들을 기억하기 위해 미국 워싱턴 DC엔
34:43화강암 패널 총 100개 규모의 추모의 벽이 세워졌습니다
34:49유엔군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싸웠기에
35:06국적도 계급도 상관없이 모두 승부한 시세이며
35:22이들을 기억하는 것만이 가장 의미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35:27눈부신 오늘을 잊게 한 지난 날의 아픈 기억
35:37그 의미를 누구보다 절실하게 알고 있는 뉴욕주 참전용사 스칼라도 씨입니다
35:46전쟁과 관련된 소장품을 모아둔 개인 박물관
36:08이곳은 마치 75년 전에 시간이 멈춘 것처럼
36:14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물건들로 가득합니다
36:1818살에 처음 한국으로 파병된 스칼라토 씨
36:28중공군과 접전을 벌렸던 판문점 일대
36:32최전선에서 복무했고
36:3418살에 처음 한국으로 파병된 스칼라토 씨
36:40중공군과 접전을 벌렸던 판문점 일대
36:46최전선에서 복무했습니다
36:50그 당시를 설명할 수 있는 물건은
36:56차마 꺼내보기 두려운 가장 괴로운 기억의 조각
37:01바로 이 칼입니다
37:05파이오가 Jacqueline
37:10우리�hal sem NRK
37:15이 칼국에서 공격을 받았다
37:18이 칼국에서 벌렸던 판문점
37:19esta 칼국에서 다시 돌아왔다
37:21그리고 이 칼국에서 다시 돌아왔다
37:23그리고 이 칼국에서 다시 돌아왔다
37:25그리고 이제 다lanート
37:27그래서 우리는 branded
37:29우리는 자체의 의미
37:31나를 뒤로 오른편을 발견
37:33그리고 그와 함께
37:35이 기름을 겪고
37:39이 기술을 만나고
37:41이 기술을 겪고
37:44이 기술을 겪고
37:46이 기술을 겪고
37:48이 현장에 있는 게
37:51그는 그냥
37:53인간을 겪고
37:55이 기술을 겪고
37:5770년 만에
37:59오랫동안 그를 괴롭힌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38:06전쟁 후유증은 극심했고 한국은 늘 잊고 싶은 나라였습니다
38:12그러나 그 마음을 바꿔놓은 건 역시 한국이었습니다
38:201990, I met my first South Korean
38:26we put that monument up over here in Harp Harp Harp
38:30and every Sunday there was a bouquet of flowers
38:3412, 24 roses
38:37so we kept saying, who the hell is, who's this guy, we don't know who he is
38:42so one day I happen to be in that area
38:47and I pulled up, I said, what are you doing there, he said, I'm putting flowers
38:52I said, who are you?
38:54he said, I'm South Korean, I said, South Korean
38:57I said, when did you get here?
38:59he said, 25 years ago
39:02you know, I'm shocked
39:04and that was in the back of my mind
39:08what am I doing here?
39:09I was here to free a country
39:12I was here to free the children
39:15and that's the way I felt
39:16당신의 희생을 잊지 않았다고
39:21덕분에 지금 우리가 있는 거라고
39:25한국 사람들은 꾸준히 표현해 주었고
39:29그 마음에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39:32First thing I would say to them was
39:36I would thank them
39:37I would thank them for helping me with my PTSD
39:41진심 어린 마음이 오랜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39:48전쟁의 아픔은 피해자인 우리만의 것이 아닙니다
39:57우리를 위해 싸워준 참전용사들에게도
40:01큰 트라우마를 남긴 참혹한 역사
40:04이들을 기억하고 꾸준히 감사를 표현해야만
40:13서로 치유하고 위로 받을 수 있다는 걸 아는 한정우 이사장은
40:18그래서 미래 세대를 위한 역사 교육 자료집을 만들고 있습니다
40:232011년 제가 살고 있는 시라큐스의 참전용사
40:3037분, 37분의 인터뷰를 시작으로 해서
40:34현재까지 1,600여 점의
40:3722개국 UN 참전용사 인터뷰를 저희들이 갖추고 있고요
40:42세계 22개 참전국을 직접 방문해
40:46생생한 증언을 영상으로 기록하고
40:49디지털 아카이브에 연구 보존하고 있는데요
40:53안부를 주고받는 로저 스트링햄씨
41:22참전 당시 틈틈이 그렸던 그림이
41:26한정우 이사장을 통해 처음 공개되면서
41:29당시를 기록한 역사적 자료로 주목받았습니다
41:34알려지지 않은 참전용사들의 이야기를 발굴하는 것
41:47그 자체로 의미가 큽니다
41:52전쟁에 참여했던 미국 참전용사의 수는
41:56190만 정도가 됩니다
41:58그런데 그분들의 지금 평균 연령이 92세이고
42:01정말 매일매일 그분들이 돌아가시고 계세요
42:05그분들을 기리고 기억하고
42:08그분들에게 감사의 표시를 할 수 있는
42:10그런 방법을 저희들이 강구를 해야 되고
42:12그렇게 되어야만 일회성을 극복할 수 있고
42:16미래세들에게 교육할 수 있는
42:18유일한 방법이라고 저는 확신을 합니다
42:20기억은 곧 깊은 감사의 표현이기에
42:25지금 우리를 잊게 한 과거를 기억하고
42:30꾸준히 감사를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42:35유엔 참전용사와 가족들을 초청해 마음을 전하고
42:42전쟁의 역사를 제대로 알리기 위해 책을 지필하며
42:46참전용웅을 위한 일이라면 늘 앞장서 왔는데요
42:50이미 참전용사는 사이에선 잘 알려져 있을 정도입니다
43:11잘 다녀가십시오
43:13옥주에 건강하십시오 오래오래요
43:15감사합니다
43:17저분들 국가를 기억해요
43:19개인이 아니고 국가를 의식한다
43:23과거에 젊어서 활동했던 그 기가 그대로 살아있어요
43:27특히 전쟁기념관의 상징인 유엔 참전용사는
43:31이곳을 찾는 전세계의 방문객들이 195만 유엔 참전용사를 추모하고
43:49고마운 마음을 전할 수 있도록 기념비 건립에 가장 큰 역할을 했습니다
43:55조건 없이 목숨을 바친 유엔군들에게 오랫동안 기억하겠다는 약속을
44:23꼭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44:27유엔군이 없었으면 우리나라가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셔야 할 겁니다
44:33그런데 존재해서 지금 제가 있고 여러분이 있습니다
44:38그에 대한 존재에 대한 고마운 표시로 꼭 유엔을 기념해야 한다
44:42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44:44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10월 24일이 유엔데이였고 공휴일이었습니다
44:51이날만은 학교에서 유엔군에 대해서 생각하고 공부하고 기억하고 각종 기념행사를 했지요
45:01유엔을 기념하는 10월 24일은 공휴일이었지만 70년대 중반 폐지됐습니다
45:09그러나 공휴일 지정만큼 기억하기 좋은 방법은 없기에
45:15다시 한번 고려할 필요성이 있다고 인사들은 입을 모아 말합니다
45:20세계에서 대한민국만큼 유엔의 신세진 나라가 그렇게 많지 않아요
45:25항상 잊지 않도록 우리 후배들이 잊지 않도록 이렇게 자꾸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45:33과거 희생과 헌신으로 이 땅의 평화를 지키고 고국에 돌아가서도 한국의 소식을 궁금해하고 우리의 안녕을 바랐던 참전용사들
45:47그들이 다시 한국 땅을 찾습니다
45:55영원한 안식을 위해 삽니다
45:59영원한 안식을 위해서
46:11영원한 아냐
46:16그 시절 위태롭고 약했던 대한민국은 당신이 만든 평화 위에서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고
46:36어느덧 참전용사의 마지막을 든든하게 품어 안을 수 있는 나라가 됐습니다.
46:46한 번도 본 적 없는 이들을 위해 기꺼이 청춘을 바친 유엔 참전용사들을 기억합니다.
47:09당신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있습니다.
47:16urity didn't enable them to rebuild and relive and make a place so magnificent as it is
47:27today.
47:27어디에 있었지?
47:28저는 정말 기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47:31저는 뭐였고 싶어하는 것이었습니다.
47:34그리고 내가 한 번 더 이상 regretted.
47:37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요?
47:39네.
47:40네.
47:41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요?
47:43당연히요.
47:44저는 그것을 반영했습니다.
47:45그리고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것입니다.
47:48그래서 저에게는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47:51내가 한 번 더 이상 흥미로웠습니다.
47:55아픈 역사의 순간에서 우리의 손을 잡아주고
48:09여전히 대한민국을 가슴에 품고 사는 유엔 참전용사들이 있습니다
48:15그 나라의 영웅들을 잊지 않고 오래도록 기억하겠다는 약속
48:21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크고 깊은 감사의 표현일 겁니다
48:27고맙습니다
48:29원조를 받던 나라가 원조를 주는 나라도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 하나다
48:51고맙습니다
49:01한글자막 by 한효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