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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 6.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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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한국국토정보공사
00:02한국국토정보공사
00:04한국국토정보공사
00:06한국국토정보공사
00:08한국국토정보공사
00:10한국국토정보공사
00:12병원은 학생이죠
00:14소설가가 되려고 그랬어요
00:18기계 분야의 과학자
00:22반에서 1, 2, 3, 4등 안에 다 들어왔거든
00:24이사 되는 게 없죠
00:26학교 다닐 때만
00:286.25전쟁만 안 일어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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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37소년들의 선택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00:4275년 전 이곳에서 많은 소년들이 모였습니다
00:5116, 17
00:53그저 공부하고 친구들과 웃으며 지냈을 소년들이
00:57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00:59전쟁터로 향했죠
01:01꿈을 청춘을 놓쳐버린 소년들의 이야기입니다
01:07지금부터
01:226.25전쟁 당시 대한민국을 지켜내시고
01:24장렬히 산하하신
01:25호국의 영웅 고 이봉수 하사님의
01:28귀환행사를 시작하겠습니다
01:29먼저 전사자 신원확인 통지서를 전달하겠습니다
01:33고 이봉수 하사님의 유예를
01:352022년 11월 9일
01:37경상북도 경주시
01:39안강읍 노당리 일대에서 발굴하여
01:41고인의 유예 DNA와
01:43동생 이봉구님의 DNA를 비교한 결과
01:46형제관계로 확인되어
01:48신원확인 통지서를 전해드립니다
01:50다음은 고인의 유품을 담은
01:57호국의 어람을 전달하시겠습니다
01:5975년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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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36사귀노
02:37결국은 지원을 했지
02:4050년 8월 7일부터 9월 22일까지
02:44안강기계 전투가 있었거든요
02:469월 17일날
02:48안강기계 전투에서
02:50전사하셨을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02:532022년 어레산 기숙에서는
02:57고 이봉수 학도병을 포함한
02:598구의 유예와
03:01493점의 유품이 발견됐는데요
03:04전국적으로는 현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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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6경주 뿐만 아니죠
03:19전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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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3왜 찾아다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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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2내가 그럴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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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2자 집 갔다 앉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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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3백발이 성성해진 동생들이
04:42부모를 대신해
04:44늦은 작별 인사를 건넵니다
04:46그렇게 해야되나
04:55좀 찾기려고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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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59좀 찾으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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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4그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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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32어레사는
05:336.25 전쟁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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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47깊은 산자락에
05:49아직도 잠들어 있습니다
05:501950년 여름
05:53낙동강 전선은
05:55대한민국의
05:56마지막 방어선이었습니다
05:59서울이 함락되고
06:02낙동강 이난만
06:03겨우 남은 상황
06:04가장 절실한 건
06:06병력이었습니다
06:07전황의 위급함 속에서
06:11자발적으로 나서기 시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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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4그렇게 전국에서 모인
06:18약 2만 7천여 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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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1대부분 훈련도 없이
06:23곧바로 전선에
06:24투입됐습니다
06:25그중
06:28안강 기계전투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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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32참전했던
06:33철한 전투였는데요
06:35하지만
06:36생각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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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0교복 입고
06:41교실에서 수학문제 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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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6그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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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9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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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세월이 흘러도
07:02쉽게
07:03흐려지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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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9부모님 아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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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3아버지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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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6몰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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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30몸과 마음에
07:31평생의 상처를
07:32새겼습니다
07:33경주에 수도사단
07:391년대
07:403대대
07:411소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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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44한 분대
07:45같이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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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52북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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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56전투를 했습니다
07:58새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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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6반드시 누부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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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0아직 살았는데
08:22숨쉬는데 답답다
08:24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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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6태극기 덮어놓은 걸
08:27그들
08:28제발 돌아서니까
08:29숨이 끊겨야 뻔해요
08:31그때 총소리나고
08:32양방도 나가고
08:34펑크는 소리가 또 나고 하는데
08:36선배님은 손 하나 날라가 보고
08:38나는 머리에 파편
08:40왔고 기기 가지고
08:42피가 막 전 피가
08:43지금도
08:45파편 흠이
08:47꽉 있잖아요
08:48여기
08:48조매만 더 들어가시면
08:51나도 죽었죠
08:54그런 생각하면
08:57지금도 눈물이 납니다
08:58충성은 멎었지만
09:04기억은 수없이
09:06새벽 그 언덕으로
09:08되돌아갔습니다
09:09선배와 친구들은
09:14돌아오지 못했고
09:15소년의 마음은
09:17평생
09:17빈 교실에
09:19머물러야 했습니다
09:20보고 싶지요
09:24꿈이라도 보고 싶지요
09:27만나면은
09:29뭐라고 얘기하고 싶으세요?
09:32고생 많이 했다고 하죠
09:33함께 학도병으로 참전했지만
09:43돌아오지 못한 친구들
09:45학교에서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09:50혹시나 만났던 기억이 있을까
10:12말을 이어봅니다
10:14새로운 이름이 새겨질 때마다
10:22학교를 찾는 것도
10:23그리운 이름들 때문입니다
10:26제1차로 170여 명
10:292차로 50여 명
10:32그 후 3차 100여 명 등
10:35총 320여 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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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0전후 온전한 몸으로
10:44다시 교문을 찾은 이도 있었으나
10:46안타깝게도 돌아오지 못한
10:49어린 넋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10:51그동안 확인된 전몰학도병은 60명
10:56여기에 오늘 3명의 이름이 더해졌습니다
11:00김영석
11:03노영석
11:06조필재
11:09전몰학도병 선배들의 넋을 기리고
11:14그들의 희생을 추모하는 자리
11:16잊혔던 시간에 대한 작은 위로입니다
11:24깎아머리 소녀들이 겪은 전쟁터는
11:34얼마나 낯설고 무서웠으며
11:36엄마 아빠가 얼마나 보고 싶었겠습니까
11:40또한 살아오지 못한 친구들의 빈자를 보면서
11:44죄인 아닌 죄인의 마음으로 살아온
11:47친구들의 마음은 오죽했겠습니까
11:50학도병으로 가셔서 어디에서 전사하셨는지
11:55시신은 어디에 있는지조차도 모릅니다
11:58저희 조부부님을 비롯한 가족들은
12:02한평생 전사하신 벽부님을 그리워하며
12:06마음 아파하셨습니다
12:07이름만으로도 그리운 가족
12:12그 짧은 생의 마지막 기록이
12:15아직 학교에 남아있습니다
12:17김영석님 32년 2월 5일생이시고
12:22기록이 보니까 4년까지만
12:245학년 안 마시고
12:26못 마치고 유계 참전하셔가지고
12:30입학은 했지만 졸업 날짜 대신
12:34전사 소식으로 돌아온 형님은
12:36늘 아픈 기억이었습니다
12:39이제 그래도 나이가 들었으니까
12:42이제 좀 정리가 되죠
12:45고등학교 다닐 때
12:48이때쯤은 형님 생각하면
12:51마음이 아팠어요
12:54형님 학적부인데
12:56노영자석자님이시고
12:58영천이 고향이셨고요
12:59아주 협동심도 있으시고
13:02책임감은 아주 강하시고
13:04그래서 아마 참전하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13:06처음에는 이제 어머니가
13:11돌아가셨다까지만은
13:13설마 설마 안 찾아오겠나
13:17이래가지고 이제 안 찾았어요 우리도
13:24상용화 통지에서도
13:25나은 게 받았는데
13:27어머니가 안 믿었어요
13:29이제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에
13:32이제 사람 저 아버지가
13:36이제 국방부로 이렇게 해가지고
13:38찾아보니까 현충원에
13:41모시져 있다
13:43그 안 가봐라 이래요
13:45그래 이제 우리 이제 식구도 다 갔습니다
13:48글자만 노영석 글자보고 울었습니다
13:56형님의 빈자리는 수십 년이 지나도
13:59익숙해지지 않았습니다
14:01낡은 학적부라도 꼭 보고 싶었던 이유가 있었는데요
14:16용감한 선택을 했지만
14:32그저 누군가의 형이자
14:34오빠였던 학생들
14:36남겨진 기록을 가족들은
14:39오래 들여다봅니다
14:41기계와 안강은 포항과 경주를 거쳐
14:46부산으로 이어지는 전략적 관문이었습니다
14:50만약 포항이 함락되면
14:53낙동강 방어선 전체가 무너질 수 있는 상황
14:57그래서 이곳은 남과 북 모두에게
15:00반드시 사수해야 할 승부처였습니다
15:04포항 중학교 6학년에 재학 중이었습니다
15:11그저 평화롭게 공부하고 있는데
15:146.25 전쟁이 일어났다 하는 것을 들었거든요
15:18교장선생님께서 정교생 아침 조회 때
15:24우리나라 전황을 대충 얘기하더라고요
15:28나라가 위급하다 미틀었다
15:30우리 6학년 뒤에 어떤 큰 학생이
15:336학년이 앞당서서 나가서 싸우자
15:37우리가 앞당서서 싸워야
15:39우리 후배들이 따라올 거 아이가
15:41그래서 못하고
15:42그래 좋다 우리 다 같이 가자 이랬거든
15:48한 명씩 번호까지 붙여가며
16:04기억하고 싶었던 친구들
16:07그 중에서도 평생의 그림으로 남은
16:10얼굴들이 있습니다
16:13우리는 절대 헤어지지 마자 했다고
16:16내 죽으면 네가 내 실제 수습하고
16:19네가 죽으면 우리가 수습하고
16:22이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절대 헤어지지 마 이래가지고
16:25폐하 분대까지도 같이 붙어 잡았다고
16:32무기를 받고 친구들과 함께 처음 배치된 곳은
16:36고지전이 계속되던 어레산 자락이었습니다
16:40폐가 어둠이 깔리더라
16:44그래서 저녁 못 먹었다 하니까
16:47여기 중업부 한 개 있네
16:49이거라도 셋이 너나 먹으라고 하더라고
16:52그래 중업부 한 개 가서 셋이 너나 먹었어 먹고
16:55김재익원에 간 친구가
16:58야 우리 좁은 친구는 못하겠다
17:01우리 장교가 되자 이렇게 하는 게다
17:04그래 내가 그래서
17:05포항에 벌써 인민군 들어왔는데
17:07어디 가서 장교 희망하노?
17:09이런 말 하고 있는데
17:11갑자기 나부터 딱 쓰면서
17:15손들어 손들어서 하는 게다
17:17안심하고 앉아있다가 갑자기 습벽을 다 했으니까
17:21정신을 못 차리고 도망가기가 바쁜 거예요
17:24그래서 나는 총을 딱 들고
17:26그 다음에 산 밑으로 그냥
17:27저기 올라오는 쪽으로 굴러버렸다고 나는
17:30굴러가지고 한참 내려오고
17:34나무에 밭자가 정지가 됐죠
17:38그리고 이제 그 다음에
17:40그 다음에 이 친구들이 어디에 있는지
17:42제일 궁금하잖아요
17:45그래 그러니까 친구들이 안 보여
17:49아 여기서 탈 났구나 싶어서 죽었구나
17:55총 한 번 못 사보고 유명을 달리한 친구들
17:59결국 홀로 남겨진 그는
18:01이후 인천상륙작전, 서울수복작전, 금화지구전투 등
18:06수없이 사선을 넘나르며 전쟁을 치렀습니다
18:11그리고 4년 후에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18:16온 날까지 이 친구들 시체를 내가 못 찾고 있고
18:22국방부 위에 발굴단에게도 몇 번 건의도 하고
18:27이래도 아직까지 못 찾고 있는데
18:32전쟁 이후의 삶을 묵묵히 살아내며
18:35소년은 홀로 노인이 되었지만
18:38여전히 두고 온 친구들이 사무칩니다
18:42그때 안 죽고 살아남았으면
18:43요즘 우리 얼마나 다정하게
18:45견우도 되고 친구도 되고
18:48다정하게 일을 지니겠습니까
18:50살았는데 혼자 외톨비가 되어서 외롭죠
19:021950년 전쟁의 험화는 포항을 잿더미로 만들었습니다
19:10그 중심에 포항여자중학교가 있었는데요
19:19지금은 고등학교로 바뀌었지만
19:21당시에 치열했던 전투는 여러 기록으로 남아있습니다
19:25이곳 포항여중에서 벌어진 전투는
19:31학도병들로만 구성된 부대가
19:34북한군과 맞서 싸운 6.25전쟁의 대표적인 학도병 전투였습니다
19:40결과는 당연하게도 많은 학생들이 안타깝게 희생되었죠
19:45포항여중에서 학도병들이 버텨는 덕분에
19:51시간이 확보되면서
19:53굿군과 유엔군은 반격을 준비할 수 있었는데요
20:00이후 이들의 이야기는 영화로도 제작되며
20:03널리 알려졌습니다
20:10전투에서 살아남은 학도병 중
20:13유일하게 현재 생존해 계신 분이 김만규 씨인데요
20:21당시 부대의 상황을 들어볼 수 있었습니다
20:2571명 부대원 모두가 학생이었는데요
20:28그때 연령대는 어떻게 됐나요?
20:3115부터 22살까지입니다
20:35당시 학생들끼리 있었던 분위기는 어땠어요?
20:39철수 작전하고 인민군 오면 방어작전하고
20:45서로 만나가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 거의 없었어요
20:50그래서 여기에 전사한 사람이
20:54김춘식 구해 48명이라 하지만
20:5748명 이름 모릅니다
20:59알 수 있는 것은 열넣뿐이고
21:01전국 각지에서 모여
21:07작은 학도병 부대를 이뤘던 학생들
21:10그 이름에 매년 꽃 한 송이를 울리며
21:1475년 전 새벽을 기억합니다
21:1610일날 한사람의 M1 소총 한자로와
21:22실탄 250발을 지급받았습니다
21:27신식 무기를 받아가지고
21:29분해 조립 실탄 장치
21:32손은 방법만 배우고
21:35잔 것이 밤 12시입니다
21:37밥도 못 먹었지 그날
21:40깊이 잠들었는데
21:42새벽녘에 시내에서
21:45따발총 소리가 나고
21:47비상이라고 울려서
21:49저희들이 깨어난 겁니다
21:51그때부터 이어진 4차례의 교전
21:55북한군 정예부대와 맞선 학도병들이
21:5711시간 반을 버텨낸 것은 기적 같은 일이었습니다
22:01학생복 입은 그대로 가지고
22:04전쟁한거죠
22:06개업도 군본도 명령도
22:08지휘관도 훈련도
22:11총수 아버지도 없는 경험 없는
22:13완전히 생겹이에요
22:15지산에서 박형부 때리고
22:17앞에서 경기가 청소고
22:20일으켜서 4차전이 돼가지고
22:22현장에 48명이 전사를 했고
22:2513명이 포로가 됐는데
22:2710명은 행방불명이 되어서
22:29아직도 몰라요
22:31포로가 되다가 치료를 못 받았어요
22:33열흘 동안에
22:3510명은 포로가 됐는데
22:3710명은 행방불명이 되어서
22:39아직도 몰라요
22:41포로가 되다가 치료를 못 받았어요
22:43열흘 동안에
22:44탈출에 나와가지고
22:46치료받고 잘란 거예요
22:48포로가 되다가
22:49치료를 못 받았어요
22:50열흘 동안에
22:52탈출에 나와가지고
22:54치료받고 잘란 거예요
22:57뼈가 뿌려져 있습니다
22:59뿌려져 있는데
23:01시신경이 떨어져서
23:03눈은 뜨지만
23:05입장에는 전년 안 보입니다
23:10그날의 전투는
23:12사라지지 않는 흔적을 남겼습니다
23:1448명의 전사자 중에
23:21당시 일부의 시신들만 수습할 수 있었는데요
23:25그중에
23:27이우근 학도병이 있습니다
23:31이우근은
23:33일소대의 향도입니다
23:36서대장 밑에
23:38부대원을 돌보는 게
23:39소대의 향도입니다
23:41향도는 성격이 좋아야 돼요
23:43그래야 남의 일 돕지요
23:46평시에 우근이가
23:47친구들하고 잘 지내니까
23:49향도를 시켰지
23:54수첩은 이우근이 옷에서 나온 것입니다
23:59어머니
24:00어머니
24:01나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24:04그것도 돌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24:08십여명은 될 것입니다
24:10저는 두 명의 특공대원과 함께
24:13수류탄이라는 무서운 폭발 무기를 던져
24:16일순간에 죽이고 말았습니다
24:18어머니
24:19어머니
24:20전쟁은 왜 해야 하나요
24:22이 복잡하고 괴로운 심정을
24:25어머니께 알려드려야
24:27내 마음이 가라앉을 것 같습니다
24:30포항여중 전투가 벌어지던 그날
24:33어머니께 남긴 글에는
24:35감당하기 힘든 마음이 담겨 있었습니다
24:39이우근이는
24:42동쪽에
24:44울타리를 넘기 위해서
24:46가다가
24:48인민군의 총에 쏘아 죽었습니다
24:51울타리를 넘으려다가
24:53넘지 못하고
24:55총 맞았어요
24:57결국
24:58이우근 학도병의 편지는
25:00생전
25:01마지막 기록이 되었습니다
25:03저는 무서운 생각이 듭니다
25:06지금 내 옆에서는 수많은 학우들이
25:08저기 덤벼들 것을 기다리며
25:10뜨거운 햇빛 아래 엎드려 있습니다
25:26전장에서 보낸 아들의 마지막 인사였지만
25:35끝내 어머니는 잃지 못했습니다
25:43전쟁은 여러 모습으로 사람들의 삶에 흔적을 남겼습니다
25:49아흔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건강하게 일상을 이어가고 있는
25:54유재식 씨
25:56그의 마지막 전투는 휴전 열흘 전이었습니다
26:00금성지구 전투 때
26:02투입하기 전에
26:04손톱하고 발톱
26:06머리카락
26:07이렇게 해서
26:09봉투에다 놓고
26:10군번 쓰고
26:11이름 쓰고 해서
26:13그걸 후방에 보내더라고요
26:15그게 이제 우리가
26:17시체를 못 찾았을 때에는
26:20그게 국립묘지로 간다고
26:22그래서 아이쿠 이게
26:24죽으면 가는 곳이구나
26:25이렇게 생각하다가 한 겁니다
26:31정전협정이 시작됐지만
26:32오히려 총력전이 이어졌습니다
26:36집으로 향할 줄 알았던 발걸음도
26:39계속해서 전장을 향해 나가고 있었는데요
26:42저 소대장이나 중대장이나 하는 놈 하나가 딱 남아서 조금 마주친 거죠
26:52칼빈총을 한 입작총에다가 주고서 이렇게 갖다 대고
26:56그놈은
26:57그놈은
26:58요게 다 발총
26:59단총 귀림이다
27:00요게 맞았으니까
27:02그래놓고서 서로 딱
27:04부딪혀 놓고서
27:06총을 내고서
27:08빵 하고서 쏜 것이
27:10그놈은 어딜 맞았는지
27:12맞아서 떨어지고
27:13나도 여기에 맞아서 나도 이 자리로 떨어지고
27:18총탄은 그의 팔을 관통하고
27:20갈비뼈 8개를 부러뜨린 후에야 멈췄는데요
27:26심장 1cm 앞이라
27:29수술도 불가능했습니다
27:31들어가서 이제 이렇게 들잖아요
27:34다 하면서 삐익
27:36곧 다 들어와 삐익
27:38왜 그러냐고
27:40이렇게 요거라고 그러니깐
27:43이게 뭐냐고
27:45끝에 맞은 실천이라고
27:47설명을 갖다 해주는 거죠
27:48훈장을
27:50딴 사람은 다 바깥에다 차지만
27:52나는 안에다 차고
27:56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27:58그렇게 그의 몸속 깊은 곳엔
28:03요일무이한 훈장 하나가 남았습니다
28:09낙동강 전선에서 학도병과 우리군이 사투를 벌이는 동안
28:15섬에서는 또 다른 학도병들이
28:18바다를 건너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28:217월 말경에
28:25제희도 학도 혹단 총궐기 대회가 있었습니다
28:27제희도는 사삼 사건 때문에 나라를 진실로 사랑한다는 이런 그 의지가 학생들이 보여야 된다 하는 이런 것이 누구나마가 공감적으로 가져 있었어요
28:30내가 5남매 중에 장남인데 아버지가 사삼 사건 때 총살당했거든요
28:36그때는 참 무고하게 죽은 사람 많지 않습니까
28:39그러니까 그 5명을 벗기기 위해서 내가 군대에 가야 우리 가족의 신분이 보장된다 하는
28:45목표 하나를 가져서 군대에 들어간 거예요
28:47무섭지 않았어요
28:48
28:50가족을 살린다고 생각하니까 무서운 게 없어요
28:54내가 죽어도 가족은 살아나니까
28:57그렇게 학도병으로 자원한 제주의 중학생 1500여 명은 당시 병력이 부족했던 해병대에 배치됐습니다
29:14그렇게 학도병으로 자원한 제주의 중학생 1500여 명은 당시 병력이 부족했던 해병대에 배치됐습니다
29:24대에 배치됐습니다.
29:54청년과 중학생 3천여 명이 각각 해병대 3기와 4기로 편성됐습니다.
30:04해병대의 상황도 육지와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요.
30:08병력도 물자도 무기도 부족한 상태에서 콧바로 최전선에 투입됐습니다.
30:24해병대 3기생 우리 1기 선배는 우리보다 한 달 전에 입대한 사람은 시에 있는 농업학교에서 봤고 우리 4기생은 그럴 잠이 없었어요.
30:34입대하는 뒷날 진해로 갔죠.
30:37일부는 부산으로 가서 인천 상륙 부대를 편성이 되고
30:40해병대 3, 4기는 인천 상륙작전을 시작으로 서울수복작전, 장진호 전투 등 주요 전선에서 큰 활약을 펼쳤습니다.
31:02그 과정에서 무적해병이라는 해병대의 고유 명사가 탄생했죠.
31:10아주 시혈했습니다. 하나하나 고지를 달아났는데 많이 희생도 됐죠.
31:18제가 장난치고 전투를 하다가 서로 육박전, 공방전을 하다 보니까
31:25제가 눈 다친 줄은 몰랐습니다.
31:27좌완의 왼쪽 눈이 지금 실명입니다.
31:31보기엔 무척 협회도 자세히 보면 눈이 까만 동자에 하얗게 이렇게 돼서 돼 있어요.
31:38이쁜 얼굴이 아니니까 누가 자세히 안 봐주죠. 그러니까 그거 다행이다.
31:45세계 3대 동계전투로 손꼽히는 장진호 전투.
31:50따뜻한 섬에서 자란 제주의 소년에게 북녘에 헉하는 또 다른 전장이었습니다.
31:561950년도 겨울이 추웠다고 하는데 몇십 년 만에 추웠다고 그래요.
32:02그때가 해변대가 제일 북쪽에 올라간 데가 한경남도 장진호.
32:12아 그때는 영하 20도가 상온 기온이었는데 가만히 서 있지를 못해요.
32:22바늘로 손가락, 발가락 할 거 없이 막 찍어요.
32:26바늘로.
32:28그러니까 그게 뭐냐면 혈관이 스톱이 될 거 아니겠어요.
32:33얼어가지고.
32:34그러면 통증이 오는 거예요.
32:35그게 꼭 바늘로 찌는 것 같아요.
32:39딱딱딱딱하게.
32:39전쟁이 길어질수록 어린 자식을 전장에 보낸 부모들의 고통도 계속됐습니다.
33:03우리 어머니는 해변대가 전부 다 가운데서 다 죽고 있다는 소식을 하면서 들어가지고
33:10아차 나도 죽었는가.
33:13죽었으면 홀령이라도 찾아와야 되겠다 하는 이런 결심으로
33:16제주에서 나서가지고 배타고 부산 가가지고
33:19그것부터 화친보까지 몇 달을 걸려서 걸어가서 노숙하면서
33:25그 당시엔 전쟁 때니까 죽으러 올라가는 사람은 없어서
33:29전부 다 내려오는 사람이 피난을 하고
33:31젊은 사람 만나면은 우리 저 해변대 강상진이 알겠느냐는 알턱이 없죠.
33:41전쟁터에서 자식을 잃었다는 생각에 몸과 마음이 무너졌던 어머니.
33:49전쟁이 끝난 후 아들은 어머니를 생각하며 그림을 그렸습니다.
33:53전쟁은 오래전에 끝났지만 상처는 남았습니다.
34:23제각기 다른 얼굴로 남은 전쟁의 상은.
34:32그런데 어떤 이들에게는 상은을 증명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34:38같은 전쟁을 치렀지만 기억되지 못하는 전쟁이 있습니다.
34:57저는 93세 안정댕입니다.
35:06신전쟁 중학교 3학년 때 학대방 갔다 왔습니다.
35:10파랑산, 11사산, 13년대, 13년대 중학교 3학년 때, 나는.
35:16거기 소대장이 누구였어요?
35:17이재근.
35:19그런데 그 소대장, 소대마다 다 소대장이 소위예요.
35:23우리만큼은 일정상상각 소재장이었죠.
35:26소위가 보여져 있다 말이에요.
35:29거기서 뭐 하셨어요?
35:30아니, 나 그기당에 군인이 묻어갔어요.
35:32거기서 늙어서 무슨 전쟁 전비, 염망통 다루는 법, 수루탄 단조법.
35:40그리고 있다가는 폐전병을 데리고 갔다가는 수용소에 넣는 데가 있는가 보더만요.
35:46그렇다가 인기하면은 데리고 수용소를 넘기고 그러니까 그랬죠.
35:5193세의 나이에도 참전의 기억만큼은 생생한 안종득씨.
36:15군번 없는 학도 의용군으로 귀향한 그는 입대 통지서까지 받았습니다.
36:21기억 중 안 간다 그런 말을 들었어요.
36:24찾은 게 없어.
36:25영장 받았겠다.
36:27그래서 또 간다고 갔어.
36:30내밀것이 없으니까 실무양력것이.
36:33두 차례 군 복무까지 마쳤지만
36:36국가는 그를 학도 의용군으로도 참전 유공자로도 기억하지 않았습니다.
36:422004년부터 총 4번에 걸쳐 참전 사실 확인 신청서를 제출했지만
36:51자료 부족과 인후 보증인의 신뢰성 부족으로 모두 반려됐는데요.
36:57국방부가 참전 사실 인정하는 기본적인 툴이
37:02인후 보증인 등용이라고 하는 명쾌한 기준을 가지고 이야기한다면
37:06이미 학도 의용이 참전했던 분들 모두 다 돌아가신 상태이고
37:11서류상으로도 국가는 이미 기록관리가 안 돼 있는 상태에서
37:15아무리 괜히 노력해도 답을 찾을 수 없는 내용이구나
37:19라는 결론에 솔직히 낙담이 되게 되더라고요.
37:23이제 참전자도 보증인도 대부분 구순을 넘겼습니다.
37:30한 해 두 해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의 전쟁을 증명할 길은 점점 더 멀어지고 있습니다.
37:38그 많은 사람들 없었던 사람도 아니고
37:41군대에서 참전도 하지 않았던 사람도 아니고
37:44유교사변에 희생했던 그들을 서류상 미비로
37:47내부적 규정으로 좌틀을 들이댔을 때 아니기 때문에
37:51그 사람들은 없던 사람이라고 할 수 없는 그런 걸 돌이켜본다면
37:55우리가 현재 제도에 대한 내용을 다시 한 번 전향적으로 고민해 볼 필요가 있지 않나.
38:00이거 어머니 거 사진이네요.
38:02하루가 다르게 약해지는 아버지를 보며 자식들의 마음은 점점 조급해집니다.
38:08같이 가가지고 어머니?
38:09그래요.
38:10살아 있을 동안까지는.
38:11해보고 싶어요.
38:13그래서 제가 참전유공자들이 입는 제복을 입고.
38:17아버지 사진을 하나 찍어드리고 싶어요.
38:21그건 작은 소망이에요.
38:26한 번도 누리지 못한 사진 한 장의 예우를 가족들은 여전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38:32우리나라 유일의 학도의용군 전승기념관.
38:49학도의용군의 역사를 알리고 그 의미를 기억하게 하는 이곳에서
38:53명예관장으로 일하고 있는 권정열 씨도 학도의용군이었습니다.
38:59유교가 참전되는 내 경험 이야기를 학생들한테 설명을 함으로 인해서
39:08보는 사람이 아 이런 비참한 걸 있구나 하는 것도 알죠.
39:15이제는 노병이 된 학도의용군들.
39:18그들이 직접 전하는 당시의 이야기부터 소년들이 전장을 버텨낸
39:27시간의 증거들이 곳곳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39:31그리고 일로 볼 수 있죠.
39:39여기는 인천상륙택전에 한 건데 세계적인 기록이 나와 있습니다.
39:45밀물과 썰물의 간만의 차를 개선해서 인천상륙택전에 대성공을 하게 됩니다.
39:51이 학도의용군들이 그 당시에 신고 있던 신이라든가 유분입니다. 남았는 게.
40:00저런 신을 신었다는 것은 상당히 고급입니다.
40:06옛날에는 군인들이 밥을 어떻게 먹었나요?
40:09밥을 뭉쳐서 소금물을 해서 반찬 없이 그걸 주묵밥으로 해서
40:14그럴 때는 먹었다고. 비가 올 때는 이게 흐려가지고 올케 묵지도 못했어.
40:20전쟁 때.
40:21처음에 나왔을 때 나이가 어떻게 되셨는지.
40:2317살.
40:26아이의 눈으로 또 부모의 입을 통해 학도의용군의 역사와 기억은 그렇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40:37아이를 양육하는 부모로서 가슴이 굉장히 먹먹해졌고요.
40:42이 공간이 보다 더 많은 분들에게 알려져서
40:47많은 분들이 학도의용군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기억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40:55제가 만약에 이 시대에 태어났으면 저렇게 참전하신 분들처럼 그런 마음을 가지고
41:013년을 했을지 한 번 더 저를 돌이켜보는 시간을 가진 것 같습니다.
41:12졸업식을 시작하겠습니다.
41:21오늘 졸업식은 6.25전쟁 때에 중학교 4학년과 5학년 재학 중
41:29학도의용으로 참전하였으나
41:31여러분과 같은 도의에
41:34곧 다운 나이에 사랑하시는
41:36선배님께
41:3777년 만에 명예졸업장을 드리는
41:41매우 뜻깊은 자리입니다.
41:43전문학교병 추년비에 이름을 새긴 세 분 중
41:47학적부가 확인된 두 분에게 뒤늦은 졸업장이 도착했습니다.
41:5675년 만에 학창시절을 마무리합니다.
42:00고 노용석 학도병의 유해발굴을 기다리며 가족들은 선산에 추모비를 세워두었습니다.
42:24명예졸업장은 잃어버린 시간에 바치는 존경의 표시일 것입니다.
42:42약 5만여 동문들은 다 같은 마음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42:52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숨쉬고 활동할 수 있는 이 모든 것이
42:576.25 사변 발발 시에 본인의 목숨을 초계화 같이 바치신
43:02우리의 선배님들이 계셨기에 가능한 일인 것입니다.
43:07그래서 이런 부분들을 깊이 간직하고 기록하고 전파해야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43:13100년의 역사를 간직한 순천 매산중학교
43:236.25 전쟁 당시 이 학교의 학생들도 어린 나이에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전쟁터로 향했는데요.
43:32그 이름들이 기념비에 남아있습니다.
43:44여러분이 생각하는 그림들을 이렇게 그려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43:48지금부터 의논해 보셔서 어떤 문구를 쓸 건지 한번 시작해 봅시다.
43:52학도병 선배들의 역사를 배우고
43:59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새롭게 받아들이는 시간
44:02호국 문예대회입니다.
44:06학도병 몇 살에 간지 알아요?
44:0815살쯤에 간 것 같아요.
44:11지금 몇 살이에요?
44:12저는 14살.
44:14그러면 한 살 차이네요?
44:16네.
44:16그 얘기 듣고 어땠어요?
44:18저희가 못 나갈 것 같은데요.
44:21한 살 차이밖에 안 나는데
44:23몇 살이 싸워주고 있어.
44:25대단한 것 같아요.
44:28글과 그림으로 학도병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표현하는데요.
44:35그림 하나가 눈에 띕니다.
44:40현대 시대에 있는 학생이랑
44:42과거에 학도병으로 지어난 학생을 반반으로 그려서
44:45왼쪽에는 현재의 학생들이 자주 하는 거랑
44:48평화를 표현하려고 기둘게 그렸고요.
44:51여기 이제 총구랑 수류탄이랑 총에서 전쟁을 표현했어요.
44:57어쩌면 전쟁과 평화는 이렇게 가는 선으로
45:01팽팽히 버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45:04우리 순천에서는 그 당시 학도병들이 한 50여 명이 참전하였습니다.
45:12그런데 우리 매산학교에서 32명의 학도병들이
45:16혈서를 쓰고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45:20우리나라를 위해서 희생하신 우리 선배님들을 기리고
45:24또 그 고마움을 새기고자
45:26호궁문회대회를 열게 되었습니다.
45:31글을 쓰며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45:35그 시대의 시간과 선택을 이해해보려 합니다.
45:39안녕하세요. 저는 학도병으로 입대한
45:48매산중 선배님들의 후배 2학년 6반 김미나입니다.
45:52저는 이번에 호궁문회대회라는 것을 하며
45:55학도병에 대해 설명을 들었습니다.
45:57내가 만약 그 시대의 학도병이라면
46:00그 어린 나이에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46:04저는 항상 무섭고 정말 두려웠겠구나라는 생각밖에 나지 않았습니다.
46:09제가 지금 집에서 치킨을 뜯고 있을 수 있는 것은
46:11우리나라를 잘 지켜주셨기 때문에
46:13이렇게 좀 감사합니다.
46:22선배들의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한
46:25다음 세대의 노력이 이렇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46:34동족 상전의 역사인데
46:39있어서는 안 된 여정이야.
46:42나라와 나라의 싸움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
46:47한은 학교사한테 꿈을 이루지 못한 그 한이 있고
46:51그냥 6개월 당시에 우리 선배들이
46:54어떻게 애 먹고 살았다 하는 걸 좀 알아주면 좋겠다.
46:58필성!
46:59그 여름 전장에 섰던 소년들이 이제 아흔의 시간을 살고 있습니다.
47:07그들의 역사를 기억하고 전하는 일이
47:10우리의 책임이자 예우의 시작입니다.
47:13교사님의 행복을ищ gider 수 있는 것입니다.
47:19한글자막 by 한효정
47:49한글자막 by 한효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