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발된 범인, 11년째 증발되지 않은 피해자 [탐사보도 뉴스프리즘]

  • 2년 전
증발된 범인, 11년째 증발되지 않은 피해자 [탐사보도 뉴스프리즘]

[오프닝: 이광빈 기자]

시민의 눈높이에서 질문하고, 한국 사회에 화두를 던지며,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 가는 시작합니다.

이번 주 이 주목한 이슈, 함께 보시죠.

[영상구성]

[이광빈 기자]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구제를 위한 민간조정위원회의 조정안이 최근 어렵사리 나왔습니다.

그러나 옥시레키벤키저와 애경산업이 수용하지 않기로 하면서 11년을 이어온 피해자들의 고통과 막막함이 조금이라도 나아지지 않은 상황입니다.

당시 갓난아기였던 승희와 엄마 뱃속에 있던 초희, 그저 평범하게 사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하는 이들을 박상률 기자가 만나봤습니다.

["평범해지고 싶어요"… 끝나지 않는 고통 / 박상률 기자]

중학교 1학년 승희는 걸음걸이가 조금 불편합니다.

14살의 나이지만 관절은 노인 수준이고, 오래 걷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여기서 학교까지 거리가 별로 안되는데도 집에서 학교까지 걸어가는데 되게 힘들고…엄마가 매일 차 태워주고 있는데 가끔 가습기살균제 시위하러 나갈 때가 있거든요. 그때마다 버스 타는데 버스를 타야지만 학교까지 무사히 갈 수가 있어서 (걸어서는 못 가고?) 걸어서는 못가요."

친구들의 따돌림에 마음은 병들어갔습니다.

"흔히 말해서 왕따라고…제가 많이 체력이 약해서 운동하기도 너무 싫어하고 우울증도 걸리고 그랬으니까"

스티커 꾸미기를 좋아하는 한 살 동생 초희도 오빠와 비슷합니다.

"다른 애들보다 많이 숨차고, 많이 힘들고…제가 마음이 움츠러들어요. 애들은 알아서 뛰는데 저 혼자만 느리고 뒤쳐지니까 "

아이들은 10여년 전 가습기살균제에 노출됐습니다.

"승희는, 미토콘드리아는 정상적으로는 막이 굉장히 예뻐요. 근데 이게 망가진 형태, 테두리가 안 보이죠. 이것과 이것과 보면 테두리고 없죠. (승희는) 에너지를 만들 수 있는 힘이 없어, 그러니까 뛰려고 해도 힘이 안나는거죠."

승희는 간과 비장도 이미 망가졌습니다.

"간이 만성 간염, 간경화가 진행된 것…(14살인데?) 그러니까요 (그런 경우가 흔히 있나요?) 드물죠. 술 마신 것도 아니고 B형, C형 간염에 노출된 적도 없고, 오로지 노출된 부분이 가습기살균제에 노출되고 난 다음 이렇게…"

가해자는 기업들이지만 죄책감에 힘들어했던 엄마 경선 씨는 이날을 잊지 못합니다.

"(초희) 검사하려고 하는데 무섭고 그러니까 초희가 우니까 승희가 '괜찮아, 안 아픈거야' 이러면서 '나 많이 해봤어'"

각종 약봉지는 서랍 전체를 통째로 채워버렸습니다.

"생리식염수 만드는 소금이에요. 이걸 타서 코 세척하거나 코피가 자주 나거든요. 거의 매일 토하거나 코피가 나거나 이래요, 승희가"

'보상을 받는다 해도 우리 가족의, 그리고 나의 일상이 나아질 수 있을까'. 경선 씨는 지난 11년 동안 너무 지쳐버렸습니다.

"제가 이런 일이 없었다면 이렇게 살지 않았을 것 같아요. 제가 하고 싶은 공부 다하고 아이들도 잘 키우고 싶고 남편도 저렇게 일할 이유가 없는 사람인데, 하던 것 다 때려치우고…"

아이들의 바람을 물었더니 평범해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 가족이 이렇게 됐으면 좋겠다 싶은게 있을까) 평범하게…됐으면"

공룡 같은 대기업들과 싸우며 일상에 지쳐가고 있는 경선 씨의 진짜 두려움은 이 괴로움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광빈 기자]

피해구제 조정안이 거부되면서 피해자들은 더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됐습니다.

보상금액을 줄여 합의하거나 각자도생으로 소송전을 벌여야 합니다.

긴 시간 동안 고통을 감내해온 피해자들은 옥시와 애경의 조정안 거부에 반발하고 있는데, 대응 수단은 많지 않습니다.

많은 시민의 동참을 호소하며 불매운동에 나섰습니다.

한지이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11년 고통 물거품 위기…'조정안 거부'에 불매운동 / 한지이 기자]

작년 10월 출범한 가습기 살균제 피해 구제 조정위원회는 5개월 간의 협의 끝에 피해자 유족에게 2억원에서 4억원을 지급하고, 최중증 피해자에게 연령에 따라 최대 5억원을 지원하는 내용의 최종 조정안을 내놨습니다.

가해 기업 9곳이 7,000여 명의 피해자들에게 지급해야하는 돈은 최대 9,240억원.

하지만 60%가 넘는 금액을 부담해야 할 옥시와 애경이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서 조정안은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옥시와 애경 측은 피해보상 총액과 각 기업이 분담해야 하는 비율, 조정안의 피해보상 기준 등이 부적절하다며 거부 이유를 밝혔습니다.

이달 말을 끝으로 활동이 끝나는 조정위는 피해자 단체, 기업 대표들과 만나 활동 기한 연장을 논의했지만 옥시와 애경의 불참으로 일단 무산된 상황.

"저희에게 주어진 활동 기한, 4월 말까지는 최선을 다해서 다시 한 번 추가 협의가능성을 열어놓고 해보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활동 연장이 요청된다면 저희가 좀 더 의지를 가지고 협의를 진행할 수 있지 않을까…"

조정위는 옥시, 애경 측과 만나 추가 조정을 시도하고 있지만 상황이 녹록치 않다는 입장입니다.

지난주부터 옥시·애경에 대한 불매운동에 돌입한 피해자들과 시민단체는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한편, 조정안이 무산되면 가습기살균제 피해 구제법을 개정해야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조정위원회가 끝까지 노력을 하고 불매운동으로 기업들을 압박하고 또한 구제법을 개정해서 조정안을 담아서 법으로 강제하는 그런 방법 이런 것들을 모두 다 동원해서 이번에 가습기살균제 피해 구제를 해결했으면 합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 구제 조정위는 최종 조정안을 기반으로 영국 옥시 본사와 애경산업의 조정안 동의를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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