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보다]주먹은 가깝고 법은 먼 아시아계 증오범죄

  • 3년 전


미국에서는 아시안계를 겨냥한 혐오 범죄 아니냐, 의심되는 사건들이 계속 벌어지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이후 주로 노인, 여성 같이 약자들을 골라 폭언과 폭행이 자행되는데요.

지난 주 따로 법까지 만든 아시안계 증오범죄가, 왜 끊이지 않는지, 세계를 보다 강은아 기자가 알아봤습니다.

[리포트]
마스크를 턱까지 내려쓴 20대 남성이 마주오던 노인을 향해 주먹을 날립니다.

장을 보고 오던 중국계 70대 할머니는 벽에 부딪치며 그대로 쓰러집니다.

벌건 대낮에 행인도 여럿 있었지만, 용의자는 태연하게 자리를 떴습니다.

40대 흑인 남성이 18살 여성에게 접근해 성희롱성 발언을 하며 출신지를 묻습니다.

"한국계"라고 답하자 이후 '북한 매춘부', '핵 테러리스트'라며 폭언이 쏟아졌습니다.

[제나 두푸이 / 한국계 미국인·증오범죄 피해자]
"제가 호신용 스프레이를 뿌리니까 그가 달려들어 절 내동댕이쳤고, 결국 발목이 부러졌습니다."

경찰은 이 남성을 증오범죄와 폭행, 성추행 등의 혐의를 적용해 체포했지만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다음 날 석방했습니다.

지하철에서 묻지마 폭행을 당해도 말리는 사람이 없고, 뉴욕 한복판에서 무차별 발길질을 당해도 보안요원조차 외면하는 현실에 아시안계는 분노를 넘어 좌절할 수 밖에 없습니다.

미국 법무부는 증오범죄를 '인종이나 피부색, 종교 등이 동기가 된 범죄행위'로 정의합니다.

단순 폭행이라도 '증오범죄'가 확인되면 가중처벌이 이뤄집니다.

하지만 그 수치는 미미합니다.

증오범죄 피해 호소 건수는 연평균 20만 건이 넘지만, 보복 등이 두려워 실제 신고는 10만 건 정도며, 증오범죄로 기소된 건 1만 5천 건에 불과합니다.

폭행이나 폭언이 인종혐오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입증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미국 법원은 '벗 포(but for)' 조항을 들어 만약 인종 혐오가 없었다면 범죄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을 피해자 측이 입증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김정균 / 미국 형사전문변호사]
"인종차별 범죄라는 심증을 가지고 사건을 진행하다가 혹시라도 유죄를 입증하지 못하면 오히려 그 경찰관이라든지 검사가 괜히 인종혐오 범죄가 아닌 것을 인종범죄로 연관지어 생각한 거 아니냐…"

실제 지난 3월 애틀랜타 스파 총격 사건 당시에도 경찰은 용의자를 두둔하는 듯한 발언을 해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제이 베이커 / 체로키 카운티 보안관실 대변인(지난 3월 17일)]
"(총격을 저지른) 어제는 그(용의자)에게 정말 나쁜 날이었어요."

변화의 움직임도 시작됐습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20일 아시아계 증오범죄 보고와 수사 강화 등을 담은 아시아계증오방지법에 서명했습니다.

[조 바이든 / 미국 대통령]
"(미국을 단합시키는 핵심 가치 중) 하나는 우리나라를 오랫동안 괴롭혀 온 '추악한 독'인 증오와 인종차별에 함께 대항하는 것입니다."

미국 내 한인들도 "참지말고 신고하자"며 공동 대응에 나섰습니다.

[에스더 임 / LA 교민]
"여기 3페이지에 있는 빈 칸에는 가해자의 인상 착의와 사건이 일어난 장소, 시간, 누가 있었는지 등을 적어요."

신고나 처벌 강화 못지 않게 중요한 건 예방과 교육입니다.

코로나19 발원지가 중국이더라도 중국인을 포함한 아시안계가 폭행을 당하거나 차별을 받아선 안 됩니다.

비난과 저주를 넘어서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세계를 보다, 강은아입니다.

영상편집 : 구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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