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의견] 버스 탄 시각장애인 봤나요?…"타고 내리는 게 전쟁"

  • 4년 전
◀ 한혜경 ▶

안녕하세요?

지난 4월 뉴스데스크에서 인사드렸던 아주대학교 3학년 한혜경입니다.

혹시 저를 기억하실까요?

당시엔 앞이 전혀 안 보이는 저의 하루에 대해 소개해드렸는데요.

오늘은 저와 같은 시각장애인들이 제일 힘겨워하는 버스 이야기를 해보려합니다.

버스에서 시각장애인을 만난 적 있으신가요?

아마 없으실 겁니다.

시각장애인이 밖에 나가는 걸 꺼리는 것도 아닌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 여러분께 설명해드리고자 합니다.

경기도 수원에 있는 광역버스 정류장에 갔습니다.

친구 만나러 강남역으로 가야 하는데, 이 정류장에서 3007번 버스를 타면 되는데요.

알림판에서 나오는 음성 안내 서비스가 제게는 정말 중요합니다.

"잠시 후 도착 버스는…"

그런데 가끔 알림판이 틀릴 때가 있습니다.

눈으로 그 버스가 맞는지 확인하면 좋겠는데, 그게 안되니 매번 답답함을 느낍니다.

정류장에 서지 않고 버스가 그냥 가버리면 정말 난감합니다.

[한혜경]
"어? 이게 몇번 버스지? 죄송해요. 이리와."

버스가 안 올때는 휴대전화로 버스 알림 앱을 엽니다.

버스 현재 위치와 도착 예정 시간이 음성 안내로 나오는데 계속 확인해야 합니다.

[한혜경]
"지금 도착 정보가 3008번은 없다고 하고 3007번은 조금더 기다려야 해요."

그런데 제가 탈 3007번 버스가 방금 전 지나갔습니다.

알림 앱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버스를 놓쳤네요.

[한혜경]
"아 방금께 3007번이었어요? 어떡해… 괜찮아요. 일상이에요."
"평균 30~40분정도 기다려요."

이럴 땐 어쩔 수 없이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데요.

이것도 쉽지만은 않습니다.

[한혜경]
"앞에 사람이 있으면 제가 '버스가 도착하면 알려달라'고 말을 하는데 (그 분이) 그냥 모른 척하시면 되게 무안하거든요."

20분 가까이 기다렸는데, 3007번 버스는 제가 서있는 곳에서 뒤로 10미터 정도 떨어진 지점에서 선다는군요.

음성으로 위치를 알려주지 않아 엉뚱한 곳에 서 기다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단 버스 소리가 나면 문 소리가 나는 곳으로 다가가 기사님께 버스 번호와 행선지를 묻는 게 제일 확실하긴 방법이긴 합니다.

[한혜경]
"혹시 강남역 가나요?"
(아뇨, 안 가요.)
"강남역 안 가요? 이리와. 내려와. 안녕히가세요."

이렇게 버스가 올 때마다 버스 위치는 어딘지, 번호는 몇 번인지 확인하려 이리저리 오가다보니 시작부터 진이 빠지네요.

[한혜경]
"여긴가?"
(이 버스 탈 거예요?)
"강남역 가요?"
(네, 강남역 가요.)
"감사합니다. 몇 번 버스예요?"
(3007번)

드디어 제가 탈 버스를 찾았습니다.

이 버스 하나 타려고 정류장 이곳저곳을 헤매고, 버스 세 대를 붙잡아 묻느라 시간만 30분이 흘렀습니다.

근데 복도에 사람들이 서있는 걸 보니 버스에 앉을 자리가 없나봅니다.

[한혜경]
"그래도 앉아서 갈 때도 종종 있어요. 한 50% 있는 것 같아요. 자리가 나도 그 사실을 저는 모르기 때문에 내릴 때까지 서서가는 편이에요."

내릴 곳에 다다른 것 같은데 하차벨이 어딨는지 모르겠습니다.

[한혜경]
"제가 지금 만약 여기서 하차벨을 찾으라고 하면 어디를 눌러야 될지, 그렇다고 사람들 머리 위를 막 더듬을 수는 없잖아요."

강남에서 일을 마친 후 다시 수원에 가려는데, 사람이 너무 많네요.

이번엔 주변에 서있던 분께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다행히 하시던 전화통화마저 중간에 끊으시고 도와주시네요.

이렇게 도와주실때면 늘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드는데요.

그렇다고 언제까지 도움만 받을 수 없어 제가 직접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버스 안내 시스템을 만들어 봤습니다.

시각장애인들이 들고 다니는 음향 유도신호기를 조금 바꾼 건데요.

버스 앞문 위에 붙어있는 수신기에서 번호를 알려주는 안내음이 나오도록 만든 겁니다.

"100번 버스입니다."

저는 소리가 나는 곳으로 걸어가 버스에 탑승하면 되는데요.

리모컨의 또 다른 버튼을 누르면 하차벨이 울리기 때문에 편리합니다.

[한혜경]
"시각장애인도 주체적으로 내 앞에 선 버스가 3007번이구나. 그 번호를 인지할 수 있어야 되는 거는 저는 맞다고 생각해서"

정류장 근처에서 리모컨을 누르면

"버스정류장입니다."

정류장의 고유 번호와 이름을 알려주는 시스템도 제작해봤습니다.

[한혜경]
"이거는 절대 완성본이 되어서는 안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