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한준식 가족 같은 경우에는 먹고살기 위해 가지고 중국으로 건너간 거기 때문에 달련대. 우리도 치면 유치장이죠. 여기서 2개월간 있다가 풀려나요. 원칙적으로 하면 고향인 은덕 아우지 탄광이 있는 곳이죠. 돌아가야 되는데 북한이라고 하면 지금 일을 빠득빠득 가는 상태였지 않습니까. 그래서 다시 한번 두만강 넘자 결심을 합니다.
00:17그래서 2002년 6월 모년은 두 번째 타일로도 성공을 해요. 그렇지만 원래 있던 은덕 아버지는 이미 중국 공안에게 노출이 된 상태였습니까. 그래서 그쪽으로는 못 돌아가고 우리 어디로 갈까. 우리 큰 도시로 나가보자. 해가지고 대련. 중국 동북 삼성 가운데서 가장 큰 항구도시죠. 대련을 거친 다음에 어디로 가냐. 중국 최대의 경제 수도인 상하이까지 들어가요. 본격적으로 대도시 생활을 시작하신 거죠.
00:47다련까지 가는데 얼마나 많은 일을 겪었을 거며 다련에서 살다가 상하이 가는 게 여러분 이게 이웃집 가는 게 아니에요. 맞아요.
00:57이제 다련이나 상하이 살다 보면 때깔이 달라져요. 그래서 물이 좋아. 공안이 갑자기 잡는 일이 없어요.
01:05대도시에서는 그런 일이 그렇게 많이 벌어지진 않잖아요. 맞아요. 왜냐하면 연변에 가면 길 가다가도 잡힐 수 있어요. 딱 보이거든요. 팔복자도 많고 이 때깔이 이제 티가 나요.
01:16맞아요. 근데 계련상에 이런 곳은 탈북자가 많지 않아서 육안으로 구분이 잘 안 되고 많지 않다 보니까 경찰들이 낯선 사람을 봐도 탈북자라고 생각을 못하는 거죠.
01:28그래서 그런 면에서 상대적으로 많이 안전하기는 하죠.
01:32혹시라도 중국 어딘가를 지금 아직도 떠들면서 못 오시는 분들 있으면
01:36항상 그냥 슬리퍼 편한 거 있잖아요. 그리고 장바구니를 꼭 들고 있어요.
01:41아, 장바구니에 왔어요.
01:43그리고 가정통신문 같은 거에 이런 연습장 같은 거. 그렇죠? 이런 거 있어요.
01:48아니 중국 시골 생활을 하시다가 대도시로 가면 다른 점이 좀 있었나요?
01:53네네. 사실 저희가 북한에 있을 때는 대한민국에 대해서 남조선, 게례도당으로 배웠고
02:02남조선에는 정말 먹고 살기 힘들어서 아이들이 미군의 신화 구두를 이제 닦아주거나 아니면 자기 자신을 팔아서 부모를 먹여 살린다거나 이런 식으로 교육을 받았었거든요.
02:14근데 이제 시골에서 살면서 가장 먼저 접했던 게 이제 가을 동화였어요.
02:20한국에 대해서, 대한민국에. 울면서 중국어로 더빙 됐는데 그걸 보면서 울면서 이제 한국을 처음 접한 거죠.
02:28대한민국의 문화 콘텐츠를. 그러고 나서 시골에서 이제 도시로 오니까 그런 것들이 훨씬 더 많은 거예요.
02:35비디오를 빌려 볼 수 있는 곳도 있는데 거기에 가면 한국의 음악 CD라든가 영화 DVD 이런 것들이 되게 많았어요.
02:43그런 걸 보면서 대한민국에 대해서 이제 눈을 뜨게 되고 그러다 보니 주변에 한국에 시집 가는 사람들이 있는 거예요. 조선족 여성들.
02:54그래서 그걸 보면서 아 나도 조선족이었으면 좋겠다. 대한민국으로 시집이라도 가게라는 생각을 이제 했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