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마항쟁' 현장에 전두환이…왜 거기에?
  • 5년 전

◀ 앵커 ▶

지난 1979년 10월, 부산과 마산에서는 민주화를 요구하는 부마항쟁이 일어났고 공수부대가 이를 무차별적으로 진압하면서 수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현장에서 이를 지휘한 사실이 MBC 취재로 처음 확인됐습니다.

황재실 기자입니다.

◀ 리포트 ▶

79년 10월 16일, 부산에서 유신독재 타도를 요구하는 민주화 시위가 일어나고, 이틀 뒤인 18일 새벽 0시, 부산에 비상계엄이 선포됩니다.

3공수 특전여단과 해병 1사단 7연대가 계엄군으로 투입됩니다.

MBC가 입수한 해병 7연대의 상황일지입니다.

18일 새벽 3시 50분 해병대가 부산대학교에 진입하고, 이어 오후 2시쯤, 누군가 부산대에 도착합니다.

국군 보안사령관 전두환입니다.

계엄사령부 지휘계통과 아무 관계 없었던 보안사령관이, 부산엔 왜 왔을까.

MBC는 계엄사령부가 설치됐던 부산 군수사령부의 내부문건을 입수했습니다.

부산대 방문 두 시간 전, 전두환은 당시 계엄사령관, 3공수 특전여단장 등과 함께 진압작전 계획을 검토합니다.

이 자리에서, '소요사태 수습은 초기 진압이 가장 중요하다', '시위대에 강력한 수단을 사용하라'는 등, 부마항쟁을 초동 강경진압하자는 결론이 나옵니다.

보안사령관 전두환이 부마항쟁 진압 현장에 있었고, 작전계획을 논의했다는 사실은 40년 만에 처음 확인된 것입니다.

[이재의/5.18 기념재단 조사위원]
"깜짝 놀랐습니다. 3공수 현장에 투입된 그 부대장을 만나서, 여단장을 만나서 그렇게 작전 계획을 같이 검토를 했다, 이런 것은 굉장히 의미심장한 것이죠."

광주 5.18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전두환 씨는, 자신은 당시 지휘계통에 있지 않았으므로, 5.18 진압작전과는 무관하다고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전두환/2002년 SBS 인터뷰]
"군대라는 것은 지휘계통에 의해서 딱 움직이는 거예요. (당시의) 나는 계엄사령관 부하예요. 보안사령관은 보안사만 지휘하지, 그 외의 것은 지휘권이 없잖아."

그러나 부마항쟁 당시 지휘계통 역시, 계엄사령부는 지역사단과 2군의 지휘를 받도록 돼 있을 뿐, 보안사령관과는 무관했습니다.

[안종철/前 5.18 기록물 유네스코등재 추진단장]
"3공수 여단장을 앉혀놓고, 바로 자기(전두환)가 직접 보고를 받는다…이 부분은 자기들이 벌써 이미 하나의 권력의 핵에 앉아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그런 자료가 아닌가 생각을 해보면서, 상당히 획기적인 자료를 발굴해냈다…"

부마항쟁 때만 해도 베일에 가려있던 전두환 소장은, 10.26으로 유신정권이 무너지자 12.12 군사반란을 일으켜 권력의 전면에 등장합니다.

MBC뉴스 황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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