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등 죄다 한국인"…'병역기피' 무대 된 콩쿠르

  • 6년 전

◀ 앵커 ▶

최근 운동선수들에 대한 병역특례 문제를 놓고 논란이 뜨거웠는데요.

예술인들도 국제대회에서 입상하면 국위 선양을 하거나 문화창달에 기여했다는 명목으로 병역 혜택을 줍니다.

그런데 MBC가 지난 19년 동안의 병역 특례 현황을 입수해 살펴보니, 국위 선양과 과연 상관이 있는 건지 미심쩍은 정황이 한두 개가 아니었습니다.

김민욱 기자입니다.

◀ 리포트 ▶

이틀 전 충남 천안에서 열린 코리아국제현대무용콩쿠르의 시상식.

특별상과 동상 수상자는 무덤덤하게 상을 받고 내려오지만, 은상부터는 반응이 남다릅니다.

눈물까지 흘리며 기뻐합니다.

동상과 은상의 차이지만 너무 다른 반응.

다른 참가자의 말에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대회 참가자]
"남자 금상, 은상이 굉장히 중요하죠."
("금과 은만 병역혜택이 돌아가는 거예요?")
"네. 맞아요. 저는 이제 가야 될 것 같은데…"
("군대를요?")
"네."

이 대회는 병무청이 병역 특례를 인정하는 12개 국제 무용대회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참가자 대부분은 한국인입니다.

전체 124명 가운데 외국인은 14명.

특히 병역혜택이 걸려있는 남자 일반부 본선진출자를 보면 32명 중 30명이 한국인입니다.

이 대회에 병역혜택이 주어진 2015년 이후 외국인 참가자가 남자 일반부에서 은상 이상을 받은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국내에서 열리는 다른 대회는 어떤지 봤습니다.

2009년 이후 병역 혜택이 인정된 서울국제무용콩쿠르와 코리아국제발레콩쿠르.

남자 일반부 2위 이상 입상자 중 서울국제무용콩쿠르는 44명 중 37명, 코리아국제발레콩쿠르도 절반 이상이 한국인이었습니다.

반면 10명 넘는 한국인 입상자를 배출했던 그리스의 한 무용대회는, 한국 사람만 너무 많이 나간다며 4년 전 정부가 병역특례 대상에서 제외하자 참가자가 뚝 끊겼습니다.

[무용수 A]
"더 이상 병역 혜택이 없기 때문에 저희가 그 대회를 참여할 필요가 없죠."

이쯤 되면 국제 수준의 대회 입상자라서 혜택을 주는 게 아니라, 혜택을 주는 대회만 몰려다닌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무용대회들이 어떻게 운영되는지는 자신들이 책임질 일이 아니라며, 다만 정부 합동으로 병역 특례 제도 개선 태스크포스가 구성되면 각종 대회의 자격 요건을 다시 따져보겠다고 밝혔습니다.

MBC뉴스 김민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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