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 나누던 움막' 팽목항 분향소 역사속으로 / YTN

  • 6년 전
■ 배상훈 / 전 서울경찰청 범죄심리분석관, 김광삼 / 변호사


뉴스타워 이번에는 두 분의 전문가와 함께 국내 주요 이슈 짚어보겠습니다.

배상훈 전 서울경찰청 범죄심리분석관 그리고 김광삼 변호사 나오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인터뷰]
안녕하세요.


먼저 살펴볼 주제는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를 위한 공간이죠. 진도 팽목항의 분향소가 3년 8개월 만에 어제 철거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관련 내용을 살펴보겠는데요. 희생자 가족들이 세월호를 인양한 뒤에 분향소를 정리하겠다라고 당초에 약속을 했었는데 이 약속을 지키는 차원에서 철거가 진행되는 거죠?

[인터뷰]
2014년 4월 16일날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고 그 9개월 뒤인 2015년 1월 14일날 진도군 시민들의 도움으로 분향소를 열게 됐고요. 그러면서 세월호 선체 인양하고 여러 해저 수색을 마치면 분향소를 철저한다는 약속을 세월호 참사 일가족들이 하고 3년 7개월 만에 철거하게 된 과정이었습니다.


가슴 아픈 그런 장소가 아닐까 싶은데 유가족들이 희생자들의 사진을 옮기는 데만도 시간이 엄청 오래 걸렸다고 하죠?

[인터뷰]
일단 희생자가 304명이잖아요. 304명이나 되기 때문에 시신 옮기는 과정이 일반적인 물건을 옮기는 과정이 아니고 결국 하나하나 정성을 들여야 하고 또 가슴에도 새기는 그런 작업이라고 볼 수 있거든요. 그래서 시간은 많이 걸렀다고 보고요. 일단 분향소 설치가 사실은 세월호가 2014년 4월 16일에 세월호 참사가 났지 않습니까? 그래서 304명의 희생자가 있었는데 295명은 일단 인양이 됐어요.

그런데 나머지 9명이 인양이 안 돼서 그리고 그 당시 분향소를 적어도 나머지 9명을 인양할 때까지는 여기서 끝까지 남겠다 그래서 분향소를 설치한 거거든요. 그런데 사실 시간이 많이 걸렸고. 결국 미수습자 9명을 전체 찾아야 하는데 찾지 못했고 선체는 인양이 됐잖아요. 그래서 해저 수색도 더 의미는 없어졌습니다마는 분향소 자체가 사실은 안산에 있는 4.16 기억 시설보다는 훨씬 더 의미가 있죠. 왜냐하면 일단 참사가 일어났던 장소고 또 이 자리에서 유가족과 또 희생자들을 인양할 때마다 만남의 장소였거든요. 그래서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거기 기다림의 등대, 화면에 나왔습니다마는 그런 등대들은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에 아마 영원히 기억할 수 있는 그러한 장소...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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